문태준 시집, 외로운 영혼을 쉬게 하는 거실 '포옹'
인간은 문득 외로워지곤 한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외로울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필자도 인간이다. 그래서 이유가 있건 없건, 때때로 외롭고 울적하고 슬프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럴 때 마다 기댈 언덕이 없었다. 너무나 외로워 누군가와 소통하고 싶을 때, 오히려 그 누군가들은 부재했다.
당신은 어떠한가? 당신의 지치고 외로운 영혼을 안아 줄 누군가가 항상 존재하였는가? 만약 그렇다고 대답하였다면, 나는 이 세상에서 당신이 가장 부럽다. 하지만 세상에 과연 그런 이들이 몇이나 될까? 필자는 사랑하는 이가 있어도 주위에 사람이 많아도 외로울 수 있는 존재가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외로움, 즉 고독은 인간과 함께 하는 영원의 친구이기 때문이다.
결국 인간의 고독이라는 것은 홀로 감당해야 할 부분이다. 언제나 나의 외로움을 안아줄 일분 대기조가 있는 것은 아니기에. 스스로가 외로운 영혼을 쉬게 하고 정화시켜야 함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좀더 쉽게, 스스로 자신의 외로운 영혼을 쉬게 하는 방법이 ‘시’를 가까이 하는 것이다.
시인 문태준이 엮은 시집 ‘포옹’은 인간의 외로운 영혼을 쉬게 하는 최고의 시집이다. 문태준은 ‘포옹’을 “외로운 영혼을 쉬게 하는 거실 같은 시편들!”이라고 정의 내렸다. 시집 ‘포옹’은 특정 시인의 시집은 아니지만 인간의 외로움을 감싸 줄 차 꽃보다 맑은 영혼의 시편들을 담고 있는 시집인 것이다. 주로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느낌의 시들이 실려 시에 문외한인 사람들도 쉽게 읽고 공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문태준은 한쪽엔 시편을 담아 외로운 영혼의 독자들을 쉬게 하고 한쪽엔 시에 대한 자신의 코멘트를 달아 독자들의 외롭고 지친 마음을 다독거린다. 문태준 시인이 엮은, 시인 천양희의 ‘뒤편’만 보아도 ‘포옹’의 특징을 쉬이 알 수 있다.
천양희 시인의 ‘뒤편’은 단 3연으로 구성되어 있다. 성당의 종소리 뒤로 무수한 기도문이 박혀 있을 것이며 화려한 백화점 마네킹 뒤편에는 무수한 시침이 꽂혀 있을 것이라는 시인은 뒤편이 없다면 생의 곡선도 없다는 말로 시를 끝맺는다. 이 시를 감상한 독자라면 자신의 외로움은 사치라고 느낄 만도 하다. 화려하고 아름다워도 그 뒤편을 보면 힘들고 지친 구석이 꼭 있다는 시인의 말에 숙연해진다. 문태준 시인은 이를 두고 넉넉한 사람은 고통을 몸소 참고 견딘 사람이고 자신의 뒤란으로 돌아가 본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다.
독자는 ‘뒤편’이라는 거실에서 자신의 외로운 영혼을 쉬게 하며 반성케 한다. 그리고 문태준 시인의 글귀에서 자신의 외로움도 곧 넉넉한 사람이 되는 과정인 것을 깨닫는다. 이것이 ‘포옹’이 만들어 낸 외로운 영혼들을 감싸는 방법 중 하나이다. 무조건적으로 위로하고 다독이는 것이 아니라 그저 쉬게 하고 그저 반성케 하고 그저 느끼게 하여 스스로가 외로움을 이겨 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하지만 ‘포옹’에 담긴 시편들이 모두 위와 같은 것은 아니다. 사실, 그보다는 그저 읽기만 해도 왠지 가슴이 따뜻하고 아름다워지는 시편들이 더 많다. 무슨 말로도 설명 안 되는, 그저 읽기만 해도 아! 하고 마음 충만해지는 시편들 말이다. 그 예로 도종환의 ‘여백’을 들 수 있다.
이 시와 외로운 영혼은 연관성이 전혀 없다. 하지만 언덕 위에 줄지어 선 나무들이 아름다운 건 나무 뒤에서 말없이 받아 안고 있는 여백 때문인 것처럼 비어 있는 곳이 없는 사람은 아름답지 않다는 시인의 시편을 읽으면 그저 마음 속 깊은 곳이 잔잔하고 고요해 지며 따뜻해짐을 느낀다. 외로울 때 “외로워 말라.”라는 위로를 듣는 것보다도 시의 울림이 자연스레 독자의 외롭고 지친마음을 감싸 안는다는 것은 바로 이것을 두고 하는 말일테다. 마음이 아름답고 고요해 지는 느낌, 그 자체만으로도 개인의 지치고 힘든 영혼은 위로를 받을 수 있다. 그것이 시가 가진 힘이고 ‘포옹’은 그 시들의 집합체인 것이다.
‘포옹’은 결코 당신에게 “외로워 말라.” 또는 “힘들어 말라.”며 직접적으로 위로하진 않는다. 또한 현실 문제를 열렬히 담아내지도 비판하지도 않는다. 그저 그것이 가진 시편들로 하여금 당신의 외로운 영혼을 쉬게 하고 반성케 하며 정화시키도록 도와 줄 뿐이다. 그리고 가장 좋은 점은 당신이 찾을 때 언제나 당신의 곁에 있다는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인간의 고독은 홀로 감당해야 할 영역이다. 그 외로운 길을 덜어 줄 당신의 애인은 바로 ‘시’인 것이다. 필자는 그리 생각한다.
물론 이 시집이 당신이 껴안고 있는 현실적 문제를 해결해 주거나 그 방안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것을 기대한다면 절대 ‘포옹’을 열어보지 말라. 그저 당신이 외롭고 지칠 때, 혼자 해결하는 그 길이 너무 외로울 때 스스로의 길을 ‘시’를 통해 찾을 수도 있다는 것일 뿐. 결국 시 속에서 자신의 외로움을 달래고 해소하는 것도 ‘본인’이라는 것은 변할 수 없는 명제이다.
처음 글을 시작할 때 당신에게 물었었다. “당신의 지치고 외로운 영혼을 안아 줄 누군가가 항상 존재하였는가?”하고 말이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포옹’을 우선 감상해보길 바란다. 필자가 ‘시’라는 거실에 자신의 외로운 영혼을 누인 것처럼 당신도 그리 하게 될 것이다. 특히 ‘포옹’은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시편들을 담은 만큼 시에 처음 발을 내딛는 독자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시집이다. 오늘도 ‘포옹’은 수십 명의 안락한 거실이 되었으리라.